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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칼럼] 강제징용 대법 판결과 조약의 해석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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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04 20:54:47 수정 : 2018-11-04 20: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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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청구권 협정 제반과정 보면/민간청구권 살리려 무리한 해석/통상 ‘조약 해석원칙’ 위배 소지/한국 사법 국제 신뢰 훼손 우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대법원이 13년 동안의 장고 끝에 가해 일본기업의 위자료 배상을 인정하는 최종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의 핵심쟁점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의 배상청구권이 인정될 수 있는가이다. 대법원 판결이 조약의 해석원칙을 따르지 않고 결론 내린 것은 큰 문제를 야기한다. 조약의 해석은 전체적 문맥과 목적에 비춘 통상적 의미(문언)에 따르되, 조약 체결 시의 합의와 교섭기록 등 제반 사정과 체결 이후 당사국의 실행을 보충적으로 고려해 내려져야 한다.

먼저, 청구권협정 해당 문언을 보면 ‘체약국 국민의 권리’까지 포함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가 이에 포함됨을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도 판결문은 ‘협정문 어디에도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언급되어 있지 않아’, 보상금 및 기타청구권 개념이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청구권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 불법행위 인정 여부를 둘러싼 한·일 간 첨예한 이견으로, 이를 명시하지 않는 대신 포괄적인 ‘보상금 및 기타청구권’이란 문안을 도입해 이 문제를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려 한 것이 전체적 문맥과 목적임을 고려치 않고 있다. 

최원목 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
이어, 체결 경위 및 당사국 의사에 비추어 보더라도 판결내용은 문제가 있다. 예비회담 과정에서 피징용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우리 정부가 요구했고, 구체적 보상액수(총 요구액인 12억2000만달러 중 30%)까지 제시한 사실이 있다. 일본 측이 외교적 보호권 포기의 대가인지 개인의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인지를 묻자 우리 정부가 ‘나라로서 청구하는 것이며 개인에 대한 보상은 국내에서 조치할 성질의 것’이라고 일관되게 표명했었다. 그런데도 이번 판결은 이 요구가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 ‘교섭 담당자가 한 말에 불과’하고, 최초 요구액수보다 ‘훨씬 적은 3억달러로 협상이 타결됐다’는 것을 이유로 위자료 배상은 합의에서 제외할 의도였다고 보고 있다. 보상액수 및 형식(경제협력)은 결국 양국이 협상 끝에 의도적으로 정한 것임은 상식적인데도 말이다.

다음으로, 협정체결 이후의 실행조치를 보더라도 2007년 정부는 청구권자금법을 제정해 일정범위(해방이전 사망한 자)에서 민간청구권의 소멸을 전제로 보상절차를 마치는 등 장기간 후속조치를 취해 왔다.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의 공식의견을 보더라도 ‘위안부 문제와는 달리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3억달러 속에 포괄적으로 감안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상식적으로 무리한 해석까지 동원하면서 배상판정을 내린 사법부와 이를 이행해야 하는 정부의 국제적 위상 추락이 우려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미국 측이 그토록 투자자·정부 국제중재제도(ISD)를 삽입하려 했고, 다국적 투자자 보호 위주로 그 문안을 구성하려 했던 것도 한국 대법원보다 국제중재 판정을 신뢰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국제사회 속의 한국의 사법체계를 형성시켜 나가는 일은 글로벌 한국의 필수과제다. 전후 배상문제와 관련해 국가가 국민의 모든 청구권을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이른바 ‘일괄처리협정’은 국제분쟁의 해결·예방을 위한 방식의 하나로서,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국제관습법상 일반적으로 인정되던 조약 형식이었다.

이번 판결의 개별의견이 ‘국민의 권리가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표현이 있는데도 ‘국민의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직접적 표현이 아님을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를 용인한 것도 형식논리에 불과하다. 국제적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국가기관은 평화와 발전의 방향을 견지하며 상호협력과 ‘윈윈’(win-win)을 추구하는 국제환경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대적 경향인 인권 보호의 최후 보루로서 사법부의 위치를 생각하면서, 더 중요한 글로벌 한국의 국가기관의 기본책무인 조약의 해석원칙조차 따르지 않는 것이 어찌 진정한 현대적 경향이겠는가. 징용피해자분들에겐 청구권협정을 체결하고 실행해온 우리 정부가 어떤 형식으로든 보상함이 마땅하다.

최원목 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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